Reasonably Good 해화
방송이 시작된 이후로 연습생들 사이엔 필요 이상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구든 안달난 사람처럼 연습실을 차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밀려난 이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귀를 기울이면 가는 곳마다 음원이, 혹은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어딜 가든 예외가 있기 마련이라 했던가. 월말 평가를 준비하는 이들 중 유독 진행이 더딘 조가 있었다. 여러모로 이목을 끌던 이 연습생들은 이미 가장 많은 연습 시간을 확보하고도 여즉 다 맞춰보지 못했다더라, 연습하는 소리보다 다투는 소리가 더 자주 들린다더라 하는 진담 반, 농담 반인 소문으로 다른 연습생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확 하고 앞으로 확 해서! 어? 이게 왜 안 되냐고!”
“적당히 좀 하지? 지금 안무의 반도 숙지가 안 됐거든?”
“대충 외워서 춰봐야 어필이 안 되잖아!”
“제왕님 바보야? 언제 대충하자고 했어? 시간이 없으니까 디테일은 잠깐 미루자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것만 잡고 넘어가면 되잖아!”
아, 또다. 도돌이표다. 츠키시마는 원점으로 돌아온 대화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멈춰둔 음악 프로그램 화면엔 진행된 정도를 표시하는 바가 반도 채 재생되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런 진행 속도로 어느 세월에 끝까지 맞춰보겠다는 건지. 얼굴도 보기 싫다는 듯 등을 돌린 츠키시마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츠키시마는 속으로 몇 번이고 진정하자 되뇌며 한쪽에 던져둔 악보를 집어 올렸다. 편곡된 반주로만 동작을 맞추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안무 숙지도 채 하지 못했는데 이건 또 언제 맞춰. 츠키시마는 드물게 인상을 구기며 메모가 빼곡하게 들어찬 악보를 신경질적으로 넘겼다. 점점이 찍힌 음표마다 저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던 트레이너의 얼굴이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처음부터 욕심을 부린 편곡이긴 했다. 정확히는 이정도도 못하느냐 묻는 것 같은 카게야마의 표정에 어디 한 번 해보자 오기를 부린 결과였다. 능력에 넘치는 기교들로 채운 편곡이었으니 오랫동안 저를 봐 온 트레이너가 걱정하는 시선을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리인 것 같다고 느끼는 것과 남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오기로 똘똘 뭉친 아집은 기어이 뒤늦게 후회할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