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순자
(중략)
장마철에 들어서는 날이었다.
꿉꿉한 공기에 몸을 뒤척이던 카게야마는 가볍게 울린 진동에 결국 몸을 일으켰다. 스스로 켜진 큼직한 화면에는 판매자가 보낸 안드로이드가 금일 오후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찍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쇼핑을 즐겨한 것도 아닌 터라 택배를 받는 건 오랜만이었다. 살짝 상기된 마음을 안은 채 커튼을 치자 회색빛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 때문이었다. 손님을 맞이하기엔 썩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손님. 문득 떠오른 단어에 카게야마는 집안을 둘러봤다. 식탁엔 배달음식 쓰레기가 쌓여있었고, 바닥에는 처리하지 못한 빨래더미가 늘어져있었다. 팔을 많이 쓰면 안 된다는 핑계가 낳은 게으름이었다. 카게야마는 서둘러 큰 봉투를 찾아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어설픈 집안일이 얼추 마무리될 때쯤 타이밍 좋게 벨이 울렸다. 문을 여니 두 남자가 큰 박스를 사이에 두고 서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 씨? 남자의 물음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확인용 사인까지 마치자 두 남자는 박스를 거실까지 들여놓은 후 유유히 떠났다. 카게야마는 두 남자가 남긴 물건 앞에 무릎을 꿇고 쪼그려 앉았다. 모서리가 잔뜩 찌그러진 박스엔 취급주의, 파손주의 같은 스티커가 모순처럼 덕지덕지 붙여있었다. 판매자가 올렸던 글에 있던 이름, 츠키시마 호타루를 떠올리면 유난히 큰 크기였다. 카게야마는 완충제 때문이겠거니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었다.
“…….”
박스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보기에도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금발의 남성체 안드로이드였다. 입이 절로 벌려졌다. 이름으로 감히 성별을 나눌 수 없지만, 일본에서 호타루는 여자가 조금 더 많이 쓰는 이름이었다. 카게야마는 입을 다시 닫고는 아직 꼭 감긴 안드로이드의 눈앞에 손을 가져가 흔들었다. 움직임이 만들어낸 미풍에 길게 꺼풀진 밝은 속눈썹이 살랑였다. 안드로이드는 확실하게 잠들어있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손끝에 닿는 부드러운 살결이 퍽 어색했다. 적어도 카게야마 토비오의 기억에 남아있는 장난감은 동그란 배구공뿐이었다. 안드로이드가 단순한 로봇이라고 치면 이것은 그의 두 번째 장난감이 되는 셈이었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은 그간 숱하게 만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