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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 화살 풋잠

 

‘전부터 멋있다고 생각했어. 괜찮다면 사귀지 않을래?’

껄끄러운 우연이었다. 고백을 한 여자애는 당연히 고백 받을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뒤뜰 아래 며칠 전부터 새끼 고양이가 출몰했다. 수업 시간마다 간간이 새끼 울음소리가 들렸다. 교실 창가에서 내려다보니 나뭇잎 사이로 까만 줄무늬가 보였다. 그게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야마구치와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뒤뜰로 내려왔다. 수풀 속에서 손바닥보다도 작은 고양이가 등 털을 예민하게 세우고 있었다. 겨우 경계를 푼 녀석이 막 다가왔던 참이다. 체온이 기분 좋은지 손바닥 아래로 기어들어 눈을 감은 고양이 덕에 일어나기가 곤란했다. 남의 고백을 몰래 숨어 듣는 꼴은 더 곤란했지만. 늦게라도 일어설까 고민하기 무섭게 아는 목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왜?’

문득 고양이 등을 누르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몸을 웅크리고 졸고 있던 놈이 기분 나쁜 듯 깨어나 손아래를 빠져 나갔다. 부스럭 소리에 대화가 멈췄지만 고양이가 튀어나가지 않았더라도 끊어질 법한 흐름이었다. 한참 만에 여자애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배구하는 거 멋있고, 여자 친구도 없다고 들었고. 당황할 만도 했다. 누가 사귀자는 이야기에 왜냐고 반문을 할까. 천하의 제왕 이외에는 누구도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 너를 모르는데.’

지극히 당연한 소리지만 제왕의 입에서 나오니 어째 가여웠다. 여자애는 모기만한 소리로 말을 더듬다가 미안, 하고 달려가 버렸다. 하필이면 카게야마에게 반하다니 동정의 뜻을 표하는 바다. 나갈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불쑥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넌 여기서 뭐하냐?”

“…뭐, 여기 처음부터 있던 건 나였거든. 갑자기 이리로 와서 멋대로 고백을 받은 건 너야.”

“누가 뭐랬냐.”

카게야마는 투덜거리며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점심도 못 먹었어.”

“아직 십오분 정도 남았는데 먹으러 가지 그래.”

“됐어, 이따 몰래 까먹으면 돼.”

“대단한 분 납셨네.”

“잠깐 무릎이나 빌려줘.”

“내가 왜. 싫은데.”

싫다는 말이 닿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카게야마는 곧장 무릎을 베고 드러누웠다. 성이 나서 툭툭 무릎을 쳐올렸지만 돌덩이라도 얹었는지 꼼짝도 안했다.

 

“야.”

“응.”

“너 쟤 누군지 진짜 몰라?”

“…몰라.”

“너 같이 무심한 놈도 또 없을 거야.”

아이돌 누구를 닮았다고 소문난 3학년 여자애다. 시미즈 선배의 졸업 이후 뭇 남성들의 텅 빈 마음을 위로해주는 존재라는 꽤 거창한 타이틀이 붙었다. 가끔 진학반인 녀석들까지 그 반 앞으로 구경을 간다할 정도로 이름이 났다. 그러니까, 카게야마와 같은 3반. 배구를 뺀 그는 동급생의 존재조차 모를 정도로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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